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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수필 향기

강강술래의 추억

강강술래의 추억


우리 자매는 고향에서 구름 사이로 살며시 얼굴을 내민 보름달을 보며, 어린 시절 추석명절 이야기꽃을 피웠다. 보름달이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는 추석날 밤이면 여럿이 손을 잡고 발을 맞추며 강강술래 놀이를 하던 마당가 후박나무 평상에 누워서.

“달아달아 밝은 달아, 강강술래, 이태백이 놀던 달아, 강강술래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강강술래, 이태백이 놀던 달아, 강강술래, 계수나무 박혔으니, 강강술래, 은도끼로 찍어 내려, 강강술래, 금도끼로 다듬어서, 강강술래, 초가삼간 집을 지어 강강술래, 양친 부모 모셔다가, 강강술래, 천년만년 살고지고, 강강술래.”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며 부르다 보니 그 옛날이 엊그제인 양 새로웠다.

해가 지고 동산에 달이 뜨면 온 동네 여자들이 우리 집 아래 공터로 모여들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저녁을 먹고 엄마가 추석빔으로 며칠 동안 밤새워 만든 연두색 갑사 저고리에 분홍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껑충거리며 집을 나섰다.

강강술래는 우리 할머니, 엄마, 언니 등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주로 남해안 일대에 전승되어 오는 집단 무용으로 추석을 전후하여 달밤에 부녀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가무일체(歌舞一體)의 놀이다.

달이 중천에 떠오르면 명절 손님 치르느라고 내내 종종거리던 아낙네들까지 부엌일을 마치고 나오면 바야흐로 강강술래는 절정에 이르렀다.

장구도 잘 치고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공심언니의 선창에 따라 우리는 강강술래를 합창하며 손에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돌았다. 처음에는 진양조의 늦은 가락으로 부르다가 점차 중중모리로 바뀌고, 다시 자진모리로 빨라지면 춤 동작도 여기에 맞추어 변했다. 춤을 추는 데 필요한 기본동작은 ‘손잡기’, ‘발 놓기’, ‘손 밑으로 빠지기’ 세 부분으로 나뉜다. 손잡기는 한 줄로 둘러서서 각기 편한 데로 손바닥을 잡으면 된다. 발 놓기는 어느 한 쪽부터 도는 동작이다. 옛날에는 오른쪽으로 돌았기 때문에 오른쪽 발부터 앞으로 디디며, 보통 걸음걸이 동작으로 했다. 중 강강술래에서 잦은 강강술래로 넘어가면서 노래가 빨라지면 그 박자에 맞추어 빠르게 걷다가 뛰게 될 때는 숨이 턱에 차고 고무신은 벗겨져 버선에 흙이 덕지덕지 붙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뛰다가 놀이가 끝나면 한바탕 풀숲에서 신발 찾기에 소란이 일기도 하였다. 자정이 넘어서야 강강술래의 여흥을 누르고 각자 집으로 갔다.

이튿날 아침, 깊은 단잠에 빠져 있을 때 난데없이 돌쩌귀가 빠질 듯이 세차게 방문이 열렸다. 뒤이어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하였지만, 결국 엉덩이에 떨어지는 회초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일어났다. 방 윗목에 벗어 놓은 추석빔이 화근이었다. 치마 밑단은 터져 흙이 범벅이고, 저고리소매는 한자나 찢어져 나풀거리는 옷을 내 눈에 앞에 갖다 대며 “새 옷 벗어 놓고 헌 옷 입고 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엄마 말 안 듣는 딸은 필요 없다.”라며 집을 나가란다. 그럴 일이 없다며 옷을 살펴보니 거짓이 아니었다. 낮에는 일하느라 몇 날을 호롱불 밑에서 밤을 새워 만든 귀한 갑사 한복을 그렇게 망쳐 놓았으니 엄마가 화를 낼 만도 하였다. 늘 감싸고도는 할머니가 말리지 않았다면 난 아마 그때 집에서 쫓겨나서 고아로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색동고무신 코를 찢고, 예쁜 추석빔을 망쳐도 다음 추석에도 늘 빠짐없이 즐거웠던 그 강강술래는 생각만 해도 흥이 절로 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여성들의 놀이가 적었던 시대에 활달한 여성의 기상을 보여준 민속놀이의 하나로 음력 8월 15일, 명절을 축하하고 즐겨 노는 민속놀이로 추석을 전후해서 전라남도 해남, 진도, 완도, 고흥지방을 비롯하여 그 일대에서는 강강술래가 활발하게 행해졌었다.

요즘 고향 사람들은 무슨 놀이로 명절을 보낼까. 협동으로 이어지는 농경사회의 미풍양속인 강강술래 소리가 이 밤에 환청으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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