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성거리며 바빴던 설날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제기(祭器)들을 챙겨 넣고 집안 정리를 부지런히 끝냈다. 그리고는 서울행 버스표를 예매하러 터미널로 갔다. 마침 승차장엔 녹동 행 버스가 출발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소록도가 떠올랐다. 급히 자동 발매기에서 녹동 행 표를 뽑아 버스에 올랐다.
녹동 항에 도착하니 비릿한 갯내음이 온몸으로 파고든다. 소록도에는 15분 간격으로 여객선이 운행하는 소록도는 바로 손에 잡힐 듯이 서 있다.
명절 끝이라 그런지 차를 실을 수 있는 큰 배에 승객은 나까지 포함해 다섯 명이 전부였다. 배 위로 올라갔다. 갈매기들이 머리 위에서 끼룩끼룩 반가움을 보이며 날갯짓을 힘차게 해댄다. 배 냄새가 좋았다. 아이들 교육 핑계로 도시에서 매연에 시달리며 살다 보니 별것이 다 좋다.
소록도를 배경 삼아 추억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누구에게 부탁할까 둘러보다가 아담한 체구의 아가씨가 눈에 띄기에 부탁하였다. “네” 하며 미소 짓은 아가씨의 얼굴에 해풍이 긴 머리를 날려 짓궂게 장난을 건다. 우리는 서로 사진 찍기를 하는 사이에 아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가씨는 삼 년 전에 봉사활동으로 소록도에 왔다가 그때 만난 한 할머니를 연휴일 때엔 늘 시간 내어 뵈러 온다고 했다. 마흔 중반의 내가 스물다섯의 아가씨와 친구가 되다니 올 한해는 시! 작부터 행복하다.
소록도 선착장에서 둘은 큰 도로가 아닌 계단으로 된 오솔길로 걸었다. 작은 돌 하나하나마다 성치 못한 몸으로 계단을 만들고, 길가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에도 그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통한의 섬 소록도다.
이곳에는 원불교, 교회, 성당, 절 등 갖가지 종교가 있다. 그래서 교황과 각계의 성직자들이 자주 찾는 섬이다. 모든 행정기관도 다 있다. 그래서 소록도는 작은 왕국 같다며 웃는 아가씨의 모습이 싱그러운 레몬 같았다. 동백나무에 몇 송이 피어 있는 빨간 꽃잎에 입맞춤도 하며 성당 앞에 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모 마리아께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우리는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힘들게 투병 중인 환자들의 빠른 쾌유를 비는 기도를 하였으리라.
날씨는 맑고 햇살은 따사로운데 바닷가 숲 바람은 아직도 옷을 여미게 한다. 소나무가 길게 늘어선 길을 걸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수탄장이라는 푯말이 서 있다. 옛날 환자들이 많을 때에 이곳 수탄장에서는 감염되지 않아 따로 떨어져 사는 자식들을 한 달에 한 번 만났던 장소다. 겨울 바닷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자식이 차가운 갯바람을 맞을까 봐 부모들은 몸으로 바람막이하였고, 무더운 여름이면 반대로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쪽으로 자식을 세워 늘 부모 노릇을 하지 못한 자신들의 처지를 그렇게 나타내곤 했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해송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가 더 가슴을 울린다. 소록도에서 제일 큰 건물인 병원에 도착했다. 간호사들이 부지런히 휠체어를 밀고 있다. 이곳 간호사들은 스스로 지원하여 근무한다는데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정원수가 아름다운 중앙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원 중앙에는 ‘한센병은 낫는다.’ 란 문구가 새겨진 탑이 서 있다. 그 글을 보며 건강한 내가 얼마나 큰 축복으로 사는지 고마웠다. 잘 다듬어진 공원 넓은 잔디밭에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누런 풀들이 봄을 기다리며 졸고 있다. 꽃향기가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냄새를 쫓아가니 하얀 꽃이 만발해 있다. 산지가 일본인 차나뭇과 산다화였다. 이 엄동설한에 시린 갯바람을 이겨낸 꽃송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있었다. 곁에 있던 그도 따라서 하다 고개를 들고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보리피리로 유명한 한하운 시인이 누워있다. 부스스 잠을 깨어 보리피리를 분다. 보리피리 연주회로 중앙공원이 나무들이 환호하며 흔들린다. 그 소리에 내 가슴이 탔다. 천명의 병이라 불리는 난치문둥병 환자로서 그의 삶은 밝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지만, 그의 시에는 참담한 현실 체험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양지 바른쪽에 환자 몇 명이 모여서 낯선 방문객은 관심이 없는 듯 뭉뚝해진 손으로 종이컵을 들고 있다. 간혹 웃음소리가 들렸다. 운동장이 보였다. 96년 개원 80주년 기념공연이 있던 날, 서울에서 많은 연예인이 위문 목적으로 왔었다. 나는 그때 있었던 일 하나를 이제껏 잊지 못하고 있다. 사회자가 한 여자 환자에게 “지금 이 순간 누가 제일 그리워지고 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부모 형제”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20대에 사범학교를 졸업하여 선생님으로 근무하던 중, 나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아무도 몰래 소록도를 찾아왔었는데, 어언 50년이 넘어 팔순 할머니가 되었지만, 언제나 그리운 것은 고향과 부모 형제들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힘들까 봐 그때 소록도에 온후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그래서 더욱 그리운 부모 형제를 생각하며 흐느끼는 할머니의 애련한 모습에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이곳에는 봄이 벌써 봄이 와 있었다. 해풍에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수줍게 웃고 있었다. 이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다소곳이 피어 있는 설중매를 천혜의 섬 소록도에서 새해 벽두에 보았으니 올 한 해는 아름다운 일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다.
새 친구와 동행하면서 20대로 젊어지는 마음이다. 올 한해는 활기차게 살아야겠다. 서너 시간을 함께 보내고 친구는 나를 선착장까지 바래다주었다. 우리는 손가락을 걸어 재회를 약속했다. 배가 떠나도록 그는 선착장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바다 중간쯤에서 쳐다보니 돌층계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친구 뒷모습이 저녁노을에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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