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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수필 향기

가장 좋은 나이

 

 

가장 좋은 나이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십여 명이 둘러 앉아 좌담을 하고 있었다. 사회자가 질문을 던졌다.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나이는 언제일까? 어린 소녀가 대답했다. 모두 보살펴 주는 두 달 된 아기라고. 또 다른 어린이가 대답했다. 세 살 때라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고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한 청년이 말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자동차를 몰고 어디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가도 되는 스물 전후의 나이라고. 그러자 빙그레 웃으며 성인 남자가 대답했다. 스물다섯 이라고. 어떤 이는 마흔이 인생의 정점이라 하고 어느 숙녀는 쉰다섯이 되면 자식을 부양하는 책임감에서 놓여나 인생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좋은 나이라고 했다. 예순 다섯 살이 좋다는 남자는 그 나이에 직장에서 은퇴한 다음 인생을 편안하게 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좌담 자 가운데 대답을 하지 않은 사람은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한 분뿐이었다. 그 할머니는 모든 사람들의 얘기를 주의 깊게 다 듣고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나이가 다 좋은 나이지요. 여러분은 지금 자기 나이가 주는 즐거움을 마음껏 즐기세요.” 그 할머니의 말에 방청객들은 박수를 쳤다. 누구나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조금씩 생각의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자꾸 위를 올려다보며 살기에 지금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생각해본다. 가장 좋은 나이가 언제일까. 부모님 슬하에서 형제들과 얼굴 맞대고 살 때라는 걸 동생이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후 알았다. 그리고 삼십대 중반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며 목이 잠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잠기기 시작한 목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병원에서는 선천적으로 성대가 약하여 되도록 많은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목은 해가 질 무렵이면 조금 트이고 아침이면 다시 잠기는 것을 반복되었다. 성대를 쉽게 건드리며 영영 목소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주위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남 몰래 수 없이 울었다. 몇 년을 병원을 오가며 치료받다가 결국은 수술을 하기로 했다.

온 산과 들에 꽃이 만발한 4월 중순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에 누웠다. 벙어리가 되면 어떻게 살까. 두려움으로 내내 눈물을 흘리며 수술실로 갔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아련히 들려오던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서동애씨 수술 잘 끝나고 이제 괜찮습니다. 왜 이렇게 우세요?” 조금씩 정신이 들면서 내가 계속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생각뿐이지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흐르니, 계속 우는 나를 보며 동생도 같이 울었다는 걸 마취가 깬 후 알았다.

나는 수술 후 한 달 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의사선생님이 조금씩 말을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혹시나 하는 염려로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그렇게 예전과 변함 없는 목소리를 다시 찾았다. 그 순간은 세상에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이겨내며 살 수 있다고 다짐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점점 무디어갔다. 그런 내 마음을 텔레비전을 보면서 다시 볼 수 있는 있었다. 가장 좋은 나이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 때가 아닐까 하고.

친구들은 이제 우리 나이가 몇 살이냐며, 인생이 끝난 것처럼 스스로 나이 먹음을 자책한다. 누구나 과거를 돌아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들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부여잡고 있으며 건강과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매 시간이 즐거우면 하루가 즐겁고 그러면 일 년이 행복하다는 말도 있다. 나는 어느 사람보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얼굴도 동년배에 비하면 주름도 많다. 그래도 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만족하며 지금 나이를 즐기면서 살고 있다. 더운 여름 그늘에서도 땀이 쏟아지듯 무더운 날엔 어느 곳에 있어도 덥다. 그런 날이면 나는 밭에서 김을 맨다. 그런 나를 주위사람 들은 독하다고 한다. 왜 나라고 덥지 않을까. 땀이야 어차피 놀아도 흐른다. 그냥 있어도 더우며 오히려 탁 트인 밭이 더 시원하다. 덥지 않는지 물으며 나는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건성으로 답한다. 왜 나라고 덥지 않겠는가.

친정 엄마에게 가장 좋은 나이가 언제였는지 물었다. 엄마는 망설임 없이 너희 칠 남매 키울 때라고 했다. 지금은 몸이 아프다며 어서 죽고 싶다고 한다.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살아도, 남은 자식들이 별탈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한다. 팔 순 노인이 무슨 큰 욕심이 있겠는가...

우리 동네 골목 시장에는 내 또래의 여자가 겨울에는 붕어빵을 굽고 여름에는 삶은 옥수수를 판다. 남의 집과 집 사이의 비좁은 처마 끝 골목에서 박스를 세워 바람막이를 하고, 추운 날은 머리에 검은 비닐을 모자대신 쓰고 열심히 빵 틀을 돌린다. 손톱에는 채소 물이 들어 새까맣고, 겨울이면 추워서 움츠리고 있는 그 앞을 지나칠 때면, 나는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어 외면을 한다. 말을 섞어보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보기보다 순진한 그녀의 고향이내 옆 동네라 안후로 더욱 안쓰럽다. 그렇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는 지금이 좋은 나이라고, 웃는 그녀의 주름진 얼굴이 세월의 무게를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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