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 서울을 출발하여 고창 미당문학 세미나를 마친 후 문학관과 생가와 묘소를 참배하고 동리 신재효 선생님의 생가 앞 읍성에 도착 하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달이 떠있다. 고창 군청에 근무하는 영란선배의 해설을 들으며 고창 읍성을 올랐다. 일찍부터 많이 걸은 탓인지 발바닥도 아프고 피곤하였지만 P교수의 열정에 떠밀려 성곽을 따라 걸었다. 돌면서 다소 힘들어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싶은 쉼터처럼 편안했다.
달빛이 내리는 대나무 숲은 장관을 이루고, 우리는 드라마틱한 그 장면들을 연출하면 카메라에 담느라 다들 여념이 없다. 돌로 쌓인 작은 성곽은 역동적인 힘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읍을 둘러싸지 않고 산성처럼 되어 있는 자연석 성곽이었다. 그곳을 돌면 병이 없어지고 오래 산다고 하여 윤달에는 부녀자들이 성 밟기를 하는 풍속이 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아름다운 풍속에 나른했던 몸과 마음이 개운하게 느껴진다.
달빛에 취한 소리 가락이 흥겨운 민속자료 제 39호인 동리의 생가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 판소리를 정리한 이론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동리 신재효의 판소리가 은은히 퍼지는 가을밤에의 침입자를 반긴다. 그의 공헌은 익히 알고 판소리 문학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매력, 생명력, 동리 신재효 선생님이 추구한 판소리사적 의미와 가치는 우리가락에 한발자국 밀착되어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다.
생가의 규모는 작고 소박했다. L 조교는 생가를 보고 실망스럽단다. 만석꾼의 재력가로 당시 판소리에 관심과 지원을 아낌없이 베풀 수 있던 것으로 알고 있어 거대한 집을 상상했던 모양이다. 여느 시골집 같은 그곳은 사랑채로 남겨진 것을 그 후에 알았다. 우물 옆 담장 밑엔 그가 지은 동리가비(桐里歌碑)가 오석에 음각 되어 있었다. 이 노래비에 담겨진 내용은 그의 집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 집주변을 둘러보면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뒤꼍으로 난 문은 판소리 박물관으로 연결되어있었는데 이미 개방 시간이 지나 해설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판소리박물관 규모는 그리 대단도 요란하지도 않으며 전시실에는 동리선생님의 유품들과, 정사를 묘사하고 있는 병풍, 동리 선생님의 교지, 흥선대원군이 쓴 친필편지, 호적 단자등이 전시되어있다고 하였다. 조선후기의 판소리 연구가로 이름 높았던 신재효선생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에서 빛나고 있는 판소리를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45세를 전후하여 판소리의 사설을 정리하는 한편 창작생활에도 힘썼고 고전 시가론 강의 시간에 배웠던 판소리의 이론적 체계를 모색하여 '광대가'를 지어 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라는 4대법례를 마련하였다.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고 낙성연을 할 때 '경복궁 타령' '방아타령' 등을 지어 제자에게 부르게 하여, 여자도 판소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만년에는 판소리 여섯 마당을 골라 그 사설을 개작하여,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고 전형적이면서도 수식적인 문투를 활용하였다. 따라서 하층계급 특유의 신랄한 현실비판이 약화되기는 하였으나, 중인계급으로서 지닌 비판적 의식이 부각되고 사실적인 묘사와 남녀관계의 비속한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이로써 판소리가 신분을 넘어서 민족문학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훗날 얻고 있다.
유네스코에 우리의 판소리가 올라있다. 이제 세계 어딜 가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판소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개념과 역사, 그리고 소리꾼의 삶의 흔적을 찾아서 이론를 재정립하고 한 시대 열정과 재산을 바쳐가면서 그것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예술적 가치를 크게 높인 동리 신재효는 진정소리꾼 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엄청난 홍보비를 쏟아 부으며 그들의 문화 예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들을 비견해 볼 때 우리도 문화 예술을 얼마나 인지하고 후손들에게 잘 인식시켜 세계문화체제의 변화에 발맞추어 좀 더 적극적으로 판소리 우수성을 홍보하는 노력이 절대적이어야 할 것이다.
흔들리는 밤 버스에 몸을 맡기고 귓가에 살아있는 우리소리가 하늘 가득히 깊은 고요를 깨트리며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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