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예찬
막내가 퇴근길에 바나나를 한 송이를 사 왔다. 유난히 노란 빛깔인 바나나를 선 채로 두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었다. 수입 과일은 방부제와 농약성분이 많을 거란 이유로 잘 먹지 않았다. 그런 내가 유난히 바나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큰 사건이 있었다.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엄마가 당장 돌아가신다 해도 상관없었다. 정신이 가물거렸다. 나 좀 살려 달라고 힘껏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오지 않고, 점점 끊어질 듯이 아픈 배를 움켜쥐고 그대로 화장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곳에서 뒹구는 사이 온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들어갈 때 잠가둔 화장실 문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 밀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옆 칸 화장실에서 나는 인기척에 힘껏 소리 쳐봐도 대꾸조차 없었다. 지난 후에 알았다. 내가 크게 질러대는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입안에서 뱅뱅 돌았으니 들리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다.
불과 이삼 미터에 중환자실 앞 의자에 앉아있던 막내 남동생은 화장실 간 누나가 꽤 시간이 지나도록 안 나온 걱정에 무심코 쳐다본 화장실 문 밑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손을 보고 그때야 매우 급한 상황을 눈치채고 뛰어왔다. 잠겨진 문이 열리지 않자 문을 뛰어넘어와 축 늘어져 있던 나를 다급한 마음에 복도에서 다리를 다친 환자의 휠체어에 싣고 오 층에서 응급실이 있는 일 층까지 가는 동안 “누나 정신 차리라”는 울먹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응급실에서 검사하려고 피를 뽑는 주삿바늘에 정신이 들었다. 막내는 하얗게 지린 얼굴로 내 손을 붙잡고 정말 누나가 죽은 줄 알았다며 두 눈에서 주먹만 한 눈물방울을 떨구었다. 형들을 둘씩이나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보낸 경험이 있으니 혼자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간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피로가 겹친 과로라고 했다. 심근경색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친정엄마 걱정으로 며칠 동안 밥을 거른 체, 제대로 잠을 못 자 피로가 겹친 원인으로 심한 과로였다. 거기다 아침, 엄마 식사 때 나온 우유가 잘못되어 탈이 났다. 관장을 하고 나니 그렇게 아팠던 배가 조금씩 잦아들어 살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동안 이승과 저승을 오가더니 몸이 천근이다.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 응급실 침대에서 누워 올려다본 병원 하얀 천정이 빙글빙글 돈다. 나는 힘없는 두 눈꺼풀을 부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놀라 달려온 여동생의 “언니! 괜찮아.”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린다. 무거운 눈꺼풀을 올리니 동생의 눈물이 내 얼굴에 뚝 떨어진다. 동생이 가져온 옷을 갈아입고 씩 웃었더니 그제야 두 동생도 웃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옛말처럼 하필이면 이때 남편이 엄마 병문안을 왔다. 혈관주사를 맞으며 살포시 잠든 내 귀에다 형부 왔다며 동생이 깨웠다. 며칠 사이 장모보다 눈두덩 이가 도랑처럼 패이고 백지장처럼 핏기 하나 없이 누워있는 마누라가 왜 이런지 동생들을 자꾸 쳐다본다.
나는 애써 괜찮다고 해도 걱정인지 몇 번이고 “종합검사 해보자.”는 남편을 보면서 두 동생은 괜히 죄인처럼 형부와 매형에게 미안해한다. 친정어머니 간호하다 병이 났으니 어찌 아프다고 할까 괜찮다고 해야지 아마 동생들도 내 마음과 같을 것이다.
온종일 응급실에 누워 있다가 퇴원절차를 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며칠 통원 치료하고 칼륨이 많이 부족하니 바나나와 오렌지 주스를 많이 먹으란다. 바나나는 100% 수입하여 방부제를 많이 쓰는데 많이 먹으며 오히려 해롭지 않으냐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그것은 잘못된 것이니 괜찮다고 한다.
집에 오면서 사온 많은 바나나와 오렌지 주스를 본 조카들이 놀란다. “이모, 바나나 장사 하실 거예요?” 하고 묻는 조카에게 동생은 이모 약이니 너희는 많이 먹으며 안 돼! 하고 주의를 시켰다.
바나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수임하는 열대 과일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며 바나나 수입량은 2000년에 약 18만 톤 하던 것이 지금은 28만 톤으로 증가했다. 비싼 과일의 대명사였던 바나나가 가장 손쉽고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된 것이다. 그러니 값이 정말 싸서일까? 수입 바나나는 방부제와 농약 범벅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러니 재배과정과 유통 과정에서 대한 사전 정보가 없으니 나부터 선입견을 품고 있었다.
그 후, 초등학교 동창인 K 이는 필리핀 현지에서 바나나를 직접 싣고 오는 배 기관사이다. 그는 바나나는 방부제를 잘 하지 않고 바나나가 덜 익었을 때 가져오는 거라고 했다.
예전에는 감히 바나나 하면 잘 사는 부잣집에서나 먹는 과일로 알았던 귀하고 우리 몸에 유익한 바나나도 적당히 먹어야 한다는 걸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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