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데 끝이 보이면 무슨 살맛이 날까요. 모르기 때문에 살맛나는 것이란다. P스님이 가을 법회에서 ‘곡선의 묘미’를 화두로 현대 사회의 조급증, 생명경시, 물질주의에 대해 경고하며“직선이 아닌 곡선의 여유로 살자”고 권했다.
직선은 조급, 냉혹 비정함이 특징이지만 곡선은 여유, 인정 운치가 속성이라며 오늘 우리가 여유롭게 사는 것은 전前세대, 선인들이 어려운 여건을 참고 기다릴 줄 알았던 덕이라며, 사랑도 길들이고, 밥도 뜸들일 시간이 필요 한 법이거늘, 요즘은 웬만한 식당에선 제대로 뜸들인 밥을 먹기 어렵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단박에 이루려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참을성 없는 세태가 교통사고사망자 보다 많은 자살자, 하루 천명에 이르는 낙태는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나쁜 업業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쌓은 업의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라며 지진 해일 태풍 등 전 지구적 재앙이 잦은 것도 오만한 인류에 대한 경고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을 강조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굴곡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어떤 사람이 직선처럼 살고 싶지 구불구불한 곡선 인생을 살고 싶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게 사계절이 있어 철마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생각해 보자. 늘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고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면 금방 질린다. 인간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인생도 늘 한결 같으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 어디를 가든지 곡선에서 직선으로 바뀌는 도로공사를 쉽게 볼 수 있다. 별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는 곡선길들이 직선으로 바뀌면서 사고율이 더 많아졌다. 교통량이 그리 많지 않은 곳에 멀쩡한 도로가 변한 것을 보면 가끔은 화가 난다. 다들 쉽고 편리한 길만 선호 하다 보니 그런 길을 만들고자 자연을 훼손하고 국민의 세금이 도로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가. 이제는 산과 들에도 시멘트로 만든 길이 많고 흙 길은 별로 없다. 그래서 비가 조그만 내려도 홍수가 나고 비가 오지 않으며 가뭄이 들기 일쑤다. 이렇게 가다간 머지않아 우리 모두 길속에 묻혀 살 것이다. 자연을 망치면서 까지 우리가 빨리 가고자 하는 길이 어디인지. 고통 뒤에 편안함이 오듯이 편리함 뒤에는 아픔이 따르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길의 형태가 직선인 경우가 드물다. 특히 시골 골목길은 누가 계획 한 것도 아니고 명령으로 한 것도 아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곳에 길을 막지 않고 지어 골목길은 이리저리 꺾기고 운동장에서 빗물 흐르듯이 일정한 방향이 없다. 그래서 어느 낯선 골목길을 진입하면 자꾸 길의 끝이 궁금하게 되고 들어갈수록 재미를 느낀다. 서양의 길은 입구에 서면 보는 순간 끝이 보이기 때문에 초입에서 여기가 아니구나 바로 돌아서는 능률적이긴 하지만, 우리의 정서는 여유롭게 한 걸음 느리게 산다는 것이다.
얼마 전 가까운 동인 부부와 함께 명성산엘 올랐다. 내려오는 길은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닌 반대편 길을 택했다. 처음 시작은 수십 개의 나무계단이 직선으로 나 있고 발아래 산정호수가 보이니 다들 좋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계단이 직선으로 나있는 위험한 길이였다. 뒤 따르는 사람이 조그마한 돌이라도 굴린다면 앞선 사람이 위험할 정도였다. 다행히 아무사고 없이 내려온 우리 일행 중 J동인 남편은 하산 길이 이렇게 험한 길은 처음이라며 내려온 산을 다시 쳐다보며 땀을 훔친다. 이렇게 산은 직선으로 오르기도 힘들지만 내려오기도 버겁다. 그러나 능선을 따라 나 있는 곡선의 길은 시간은 걸려도 쉽게 오를 수 있고, 정상을 직선으로 쳐다보고 곧 바로 오르다 보면 장애가 더 심하고 그 어떤 여유도 느끼고 체험해 보지 못한다.
건강도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주어진 체력의 한계는 공평하다. 에너지회복 없이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직선적인 삶을 살다 보면 부서지고 망가져 삶의 열정을 잃게 된다. 단지 삶 그 자체 뿐 아니라 삶을 엮어가는 과정도 곡선이어서 그 리듬을 탈 수가 있어야 제대로 즐기며 살아 갈 수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목적이 있어서 걸어가며 직선도로처럼 평탄하고 순조롭게 흔들림 없이 가길 소망한다. 그러나 직선으로 만 달리면 시야가 넓어서 좋지만, 인생의 곡선미 또한 달려 보면 직선에서 보이지 않은, 사람 사는 묘미가 굽이굽이 묻어난다. 또한 곡선에는 한걸음 느리게 산다는 것에 있다.
언젠가 다녀온 북촌한옥의 아늑한 곡선지붕과 처마, 나무기둥의 휘어지고 구부러진 자연의 모습은 한복의 곡선미처럼 단아하고 정갈한 멋을 풍겼다. 어쩌면 담백하고 화사한 우리 여인네들의 인생의 길을 꼭 닮았다. 옛 선인들은 이런 세상을 살면서 펼쳐놓은 인생을 얼마나 깊이 있고 진지하게 여유와 인정을 베풀면서 살았는지, 우리도 여유로운 인생의 곡선길이 결실로 맺어지는 기쁨으로 승화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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