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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수필 향기

김유정 문학촌을 찾아서

김유정 문학촌을 찾아서


봄이 익어가는 초록의 경춘가도는 연초록이 호수에 내려앉는다. 의암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김유정 문인비가 길고 하얀 펜촉 모양으로 서 있었다. 1968년 김유정 기념사업회가 세운 조각비에는 김유정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산골 나그네>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산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로 시작한 <산골나그네>는 30년대 식민지 시대에 폐병으로 죽어가는 남편과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팔아 가면서 절도 행각을 했던 들병이의 처절한 삶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그 당시 어려웠던 현실에 마음이 시리다. 곁에 있는 단풍이 의암호 건너편에 우뚝 솟은 삼악산의 붉은 단풍과 어우러져 짧은 삶을 살다간 작가의 혼처럼 서럽다. 좁은 길을 타고 금병산을 휘돌아 실레 마을에 이르니 김유정 문학촌이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촌장이 우리를 반긴다. '실레'란 원래 강원도 방언으로 떡시루란 뜻이다. 금병산에 둘러싸인 마을의 지형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모양이라고 해서 실레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에는 톨스토이역(驛)이 있고 중국에는 노신의 거리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김유정역이 사람 이름을 딴 최초의 역이다. 지난해 12월 6일 마을 전체가 작품 무대로 만들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꾸기 위해 역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김유정의 작품 무대가 되는 금병산에는 봄봄길, 동백꽃길, 산골나그네길, 금 따는 콩밭 길이 있다. 나도 '땡볕'이란 이름 하나를 길에 넣었다. 금병산(해발 652m)은 가을이면 산기슭이 비단 병풍을 둘러친 듯 아름답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과연 이름처럼 오후 햇살에 반짝인다. 동백꽃길을 올라서니 '산국농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억새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는 길을 따라나섰다. 아직 오를 곳이 남았는데 해가 삼악산에 걸린다. 인제, 홍천에서 병든 남편을 숨겨놓고 위장결혼을 한 들병이가 넘나들던 산골길이 저녁노을에 물들어 금빛으로 일렁인다. 남편의 병수발과 생계를 짊어지면서도 애틋한 부부애를 잃지 않았던 들병이와 그런 부인을 보며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남편의 이야기가 금병산 자락 곳곳에 물들어 있다.

능선을 타고 오르니 생강나무가 초록 잎을 뽐낸다.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생강나무는 3월이면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노란색 작은 꽃들이 여러 개 뭉쳐 꽃대 없는 산형 꽃차례를 이룬다.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라 하는데 <정선 아리랑>에 등장하는 '올동박이'도 이 생강나무다.

산을 내려와 금병복지관에 있는 큰 느티나무 아래 이르니 '금병의숙' 이라 새긴 돌이 있다. 이곳은 김유정이 문맹 퇴치를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농민회와 부인회를 만들어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했던 곳이다. <봄봄>의 실재 인물인 김봉필의 집, 점순이네 집터, 산골나그네의 주막과 물레방아터, 만무방의 노름터 등을 찾아 실레 마을 이곳저곳을 돌면서 유정의 문학에 흠뻑 빠져들다 보니 어느덧 어둠이 엄습했다.

촌장은 김유정작품에 미쳐서 문학촌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학관에 작가의 유품이 하나도 없는 곳이 김유정 문학촌이다. 유정이 절친한 친구 안희남에게 유품 보따리를 맡겼는데 그가 월북해 유품 한 점 남아 있지 않단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문학관이라 하지 않고 문학촌이라 지은 연유( 緣由)라는 것이다.

김유정은 팔 남매의 일곱째로 종로구 운니동 진골에서 태어났다. 당시에 백여 칸의 집을 가진 부자였다. 실레 마을은 출생지가 아니라 본적지이다. 유정은 어려서 몸이 약했다. 그래서 부모들은 그에게 재산을 더 많이 모으고 또한 오래 살라는 뜻으로 '멱설이'라는 아명을 하나 더 지어 주었다. 그러나 아버지 김참봉은 어린 유정의 배앓이를 고쳐주기 위해 담배를 가르치는 실수를 했다. 담배 연기가 뱃속에 있는 벌레를 죽인다는 속신 때문이었다. 일찍 배운 담배가 폐를 나쁘게 하여 결국 폐결핵으로 죽게 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의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를 일곱 살에 여의고 2년 후에는 아버지마저 여윈 유정은 형님의 주벽으로 가산을 탕진하여 청소년기를 몹시 외롭고 힘들게 살았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던 유정은 모성겹핍증으로 연상의 연인 명창 박녹주를 사랑하지만 끝내 그의 애절한 마음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유정의 첫사랑은 끝난다.

김유정의 문학에는 당시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시골의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정서가 해학적으로 표현돼 있다. 또한, 김유정 문학의 힘은 이처럼 고향의 가공되지 않은 언어를 서울 토종의 언어로 구성하면서도 고전미를 잃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난히도 봄을 사랑하고 봄을 기다리다 서른 살의 봄에 떠나간 작가 김유정. 짧은 삶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주옥같은 이야기들은 지금도 글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문학의 불을 지핀다.

<시니어리포터 서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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