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차례준비로 바쁜 날. 늘 존경하던 L 박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서 선생, 이번에 책을 한 권 출간했는데 보내주려고.”하셨다. 새해 연휴가 지나고 싸인 본 책이 배달되었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이근후 박사(79·가족 아카데미아 원장)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갤리온)를 냈다.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일해온 그가 '현역 노인'으로 살아가며 발견한 즐거움을 담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재미있는 삶이 아닌 무엇이든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하는 삶에 관한 책이다.
2011년 76세 나이에 고려사이버대 문화학과를 최고령 수석으로 졸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박사는 부인 이동원 박사(76·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와 가족 아카데미미아를 운영하고 있다.
나이 든다는 게 좋은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노화가 진행되고, 사회에서 한발 물러서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껴안는 일이다. 하지만 노년은 누구에게나 온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삶의 한 과정이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을 애써 찾을 필요도 없다. 사는 동안 좋은 일, 즐거운 일을 만들어 가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 노년의 좋은 점은 더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는 것.
은퇴 이후 이런저런 단체에서 들어온 '수장'자리 제안을 모두 거절한 것은 "명예보다 즐거움, 책임보다 재미"를 택했기 때문이다.
내 몸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다. 몇 년 전 심장혈관이 막혀 수술을 받았고, 10년 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당뇨와 고혈압, 관상동맥협착, 담석, 통풍, 허리디스크 등 7가지 병과 더불어 살고 있다. 병은 훈장도 아니지만,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증거는 더욱 아니다. 이런 신체적 고통은 좀 고약한 친구쯤으로 생각하는 게 낫다. 건강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게 나이 들어 할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독특한 '대가족 실험'으로도 유명하다. 자녀 2남 2녀 등 다섯 가구가 2002년부터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주거 형태도 독특하다. 4층짜리 다세대주택처럼 보이는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층마다 각 세대의 현관문이 따로 있다. 공간을 철저히 분리했고, 등기도 각자 했다. 3대 13명, 다섯 가구 가족공동체의 이름은 '예띠의 집'이다. 상호 불간섭주의와 독립성 보장의 원칙을 세웠다. 서로 찾아갈 때도 반드시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한다. 식구들이 6개월에 한 번씩 돌아가며 반장(연락책·조율자 역할)을 한다. 다양한 정보와 경험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
갈등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 자체를 바라는 것이다. 시부모와 며느리는 상하관계가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통해야 한다. 큰아들이 결혼한 후 며느리에게 강조한 게 바로 '거절하는 법'이었다. '노'라고 말해야 할 때는 솔직하게 '노'라고 말하라고 했다. 누구나 거절은 불편하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다.
부모님 기일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대신에 조촐한 식사모임을 가진다. 제사의 필요성과 뜻을 살리되 형식만 바꾼 것이다. 대가족의 제사를 며느리 한두 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가족 모두 제삿날을 즐거운 날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는 최선이라는 말이 싫다. 누가 삶의 철학을 굳이 묻는다면 '次善으로 살자!'라고 답한다. 잘하는 정도에서 즐기고, 오래도록 꾸준히 하자는 뜻이다. 경쟁에서 이기려는 노력을 조금 덜어내면 인간애, 즐거움, 가족애, 봉사심, 일의 성취감을 더 잘 느끼고 즐길 수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곧 내 인생이다.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인생이 즐겁다. 좋은 인간관계의 비결은 상대의 특별한 점을 기억하는 데 있다. 상대의 장점을 그 사람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삼아야 한다.
거절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소위 고부갈등은 서로에게 싫다, 좋다는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거절을 잘하고, 거절을 잘 받아들이려면 '내 생각이 옳다, 먼저다.'라는 일방성부터 극복해야 한다.
내가 웃으면 아내도 웃고 아내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참 감사한 일이다. 우리 부부가 긴 세월 동안 큰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동반관계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사랑의 관리' 덕분이었다.
이근후 박사는 마치 이런 아름다운 노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나누어주기 위해 살아 온 사람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한 쪽 눈을 실명하고 일곱 가지의 중병들과 같이 살아가면서 발견하는 노년의 의미는 우리에게 더욱 더 큰 공감을 일으키게 한다. 그가 앓고 있는 병의 합병증으로 그는 치매확률이 일반인보다 더 높다고 한다.
그는 치매에 걸렸을 경우 아이들에게 슬퍼하지 말고 개그 프로그램처럼 그렇게 웃어달라고 주문한다. 치매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신이 있을 때까지 긍정적인 힘으로 열심히 살아야 함을 스스로에게 되새기고 있다. 그가 기억을 잃었을 때 가족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 받을 일을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고마운데, 그 고마움을 정신이 맑을 때 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이 들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지혜는 “받아들임”이라는 사실을 책 전체를 통해 잘 들려주고 있다.
나는 한 달에 한번, 매주 둘째 주 목요일 그를 종로구 신영동 가족 아카데미아 사무실 만나 제13 집의 동인지를 낸 예띠 시낭송회원들이 모여 자작시를 낭송한다.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철들지 않은 소년이 살고 있다.”라는 그는 정말 미소년이다.
이근후 박사는 당신은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지금은 나이 드는 게 두렵다고 말하는 인생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 늘 노(老)학자가 전하는 나이 듦의 즐거움을 공유함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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