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향기가 분분한 날, 친구 K가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와 “내가 보고 싶다.”며 이럴 때 네가 곁에 있다면 큰 위로가 될 거라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하던 일을 접어두고 그에게로 갔다.
출하를 눈앞에 둔 양어장의 물고기가 한 마리도 남김없이 폐사되었다는 걸 그곳에 도착한 후 알았다. K 이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다. 그 친구에게 어떤 위로를 해야 줘야 할지 막막했다.
K 이는 20년이 넘는 친구다. 우리는 아이들 학교 어머니회장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서먹하였지만 자주 만나 보니 닮은 구석이 참 많아서인지 우린 금방 친해졌다.
여름이면 교육청 주최로 관내 어머니회장단 모임이 있는 날이면, 손이 닿으면 베일 듯한 하얀 모시옷을 입은 모습이 참으로 고왔다. 나보다 위려니 했던 그를 옆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동갑네였다.
우리는 같은 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서로 바빠 만나지 못하면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일과를 보고하면서 우정을 쌓았다.
한 번을 만나도 십년지기 같은 사람이 있고, 십 년을 만나도 하루 지기 같은 사람이 있다면 K 이는 전자에 속했다. 얼굴보다는 마음이 더 곱고, 행동 하나하나는 애교로 가득했다. 우리의 우정은 가끔 주위 친구로부터 부러워서 시기와 질투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 깊게 보듬어 안았다.
가진 모든 걸 다 양어장에 쏟았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런 희망도 삶의 의욕도 없다는 그를 막힌 공간보다 탁 트인 바다가 더 좋을 것 같아서 무작정 집 앞 갯벌로 데리고 나갔다.
물 빠진 갯벌에는 바지락이 꽤 많았다. ‘웬 바지락이 이렇게 많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번 우리 양어장에 피해가 이 원수 때문”이라고 했다. 의아해하는 내게 궁금증을 풀어 준 그의 말을 빌자면 ‘그 바지락은 북한에서 수입하여 국내산으로 둔갑시키려고 친구네 집 앞 갯벌에 몰래 묻어놓았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묻어 둔 바지락이 태풍이 불어 바다에 큰 파도가 일렁이자 갯벌에 묻어둔 바지락이 갯벌 위로 올라와 다 썩었다고 한다. 그렇게 오염된 바닷물이 양어장에 밤사이 유입되었던 것이다.
아침에 양어장에 물고기 밥을 주러 갔다가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물고기가 한 마리도 남김없이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에 나는 그 바지락을 더는 캘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왜 물고기가 죽었는지 원인을 알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 우연히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무언가 썩은 냄새가 나는 걸 알고, 바다 쪽으로 가보니 썰물에 드러난 갯벌에는 썩은 바지락의 악취가 풍겨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고 했다.
K 이는 그 이유를 힘들게 마친 후, 울음보를 터트리며 엉엉 울었다. 나는 그런 친구 때문에 속상해 갯벌 한가운데서 마주 안고 울었다.
우리는 캐던 바지락을 그대로 갯벌에 놓아두고, 모래톱에 나란히 앉아 저 멀리 득량만으로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저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태양이 온종일 자신을 태웠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또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올 거라며, 친구에게 이런 시련을 겪지 않았으며 좋으련만 잘 대처해 보자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였다.
‘그대는 그런 사람 가졌는가.’라고 물은 H 시인의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말이야.’하고 믿어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K에게 나는 어떤 친구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우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느 때는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서로 이해하고, 어느 때는 희로애락의 기본 감정을 거침없이 토로하며 먼 길 가는 동반자일 거라고. 하루빨리 그가 마음에 평정을 하기를 기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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