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을 만나려고 떠났다. 힘없이 흩날리는 낙엽까지도 환상적으로 다가오는 계절이다. 길 모서리에 자리 잡고 누웠던 나뭇잎들이 저만치에서 달려오는 소슬바람에 쫓겨 또 정처 없이 유랑의 길을 떠난다. 주중인데도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단풍 나들이를 나온 관광버스로 꽉 차 있다. 주차장만큼 붐비는 곳이 화장실이다.
‘한 줄로 차례차례’란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무질서하다. 기다리는 동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내 차례가 되었다. 그때 미화원 유니폼을 입은 아주머니가 급히 내 앞을 가로막는다. 급하지 않으면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동시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바닥에 떨어진 휴지와 또 넘치는 휴지통을 비운다.
그리고 걸레로 변기를 빡빡 닦는다. 문틈으로 비친 그의 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으로 보였다. 일을 급히 끝내고 돌아선 그 얼굴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빛나고 있었다.
“아줌마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저의 직업인걸요. 뭐…”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꽃향기가 묻어났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손들이 있다. 자식을 키우느라 거칠어진 엄마의 손, 농사일하는 굳은살 박인 농부의 손, 말 못하는 이들을 위해 수화를 하는 손, 또 누군가 버린 길가의 쓰레기를 깨끗하게 치우는 미화원의 아름다운 손들로 넘친다.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붉은 악마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을 때 삼성동 무역센터 안에 입주한 외국 방송반에서 자원봉사를 한 일이 있다. 그곳에서 청소 책임을 맡은 P 언니를 도와 주변의 청소와 건물 안내를 담당하는 일이었다.
청소하는 법을 일일이 배우면서 보니 P 언니의 손은 만능 청소기 같았다.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바닥을 닦은 걸레는 여느 집 행주에 못지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요즘은 공공시설에 가면 화장실 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그 뒤란에는 청소 담당자들의 노고가 스며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 자신도 직접 체험을 해보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자욱한 담배 연기를 아무 곳에서나 뿜어내는 흡연자들. 재떨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건물 바닥에 마구 담뱃재와 꽁초를 버리는가 하면, 심지어 침도 아무렇게나 뱉기 일쑤다.
말갛게 닦아 놓은 세면대와 거울은 사방에 비눗방울이 튀어서 빨래터를 방불케 한다. 또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아 물이 계속 흐르는 일도 다반사다. 이렇듯 이곳에 종사하는 중년 아줌마들은 대부분 그 힘든 일을 천직으로 알고 성실하게 일을 한다. 나는 잠깐 하는 일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쉽게 버리는 껌도 종이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는 항상 청결하게 사용하려고 애를 쓴다. 또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마음속으로나마 고마움을 갖게 되었다. 가끔 휴식 시간에 언니들을 만나면, ‘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화장실 청소만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푸념하는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느 스님의 법문을 빌어 ‘이승에서 소제(掃除-청소)하는 보시(布施)를 행한 언니들은,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여 다른 이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아름다운 곳에서 공주처럼 살 것’이라고 위로해주었다.
‘정말 그럴까… 그럼 믿어 보아야지.’ 하고 웃음 짓는 그들의 순박한 얼굴이 전에 없이 붉은 장밋빛으로 피었다. 소제 보시를 하는 그 아름다운 손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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