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위패로 만난 아버지! 그립습니다
- 유해 없는 위패 봉안, 유공자 합동봉안식 거행 -
2013년 7월 16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는 유해를 찾을 수 없는 위패 봉안 유공자 합동봉안식이 거행되었다. 합동봉안식에서 위패로 봉안되시는 유공자는 모두 28명이었다.

봉안할 위패를 봉송하고 있다.
위패로 봉안되는 유공자는 6·25 전쟁 중에 전사한 유해를 찾을 수 없는 육군과 경찰이다. 합동봉안식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서부터 젖먹이까지 80여 명의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진행되었다.
합동봉안식은 개회식, 고인들에 대한 경례.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의식과 헌화 및 분향으로 이어졌다. 고(故) 육군 일병 김덕건 님의 유가족들 헌화와 분향으로 시작되었다.
군악대의 진혼곡이 울려 퍼지고 유가족들은 아버지, 형님, 동생, 울산에서 유복자인 남편을 따라 얼굴도 모르는 시아버지 위패 앞에 흰 국화를 놓고 큰절을 올리는 며느리.
다섯 번째 故 정종탁 이름이 불리자 남편과 아버지 부르며 부인과 딸은 위패에서 아버지이름을 확인한 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딸 절 받으세요. 어디에 계신가요. 아버지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는 유복녀의 절규에 애써 울음을 참으며 끝까지 예를 올리던 유가족들을 한순간 합동봉안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앞자리에서 계속 눈물을 흘리는 전쟁 당시 종로경찰서 경위였던 故 유건우 딸 유혜자(68·여) 씨를 만났다.

60년만에 위패로 아버지를 모시고 오열하는 고 정종택씨 유복녀
- 누구 봉안식에 참석하셨습니까? 어디서, 어떻게 전사하셨는지요?
“우리 아버지입니다. 6·25 전쟁 중에 돌아가셨어요. 그 당시 아버지는 종로 경찰서 경위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경호도 하셨다고 어머니께 들었습니다.”
- 혼자 오셨는데 다른 가족은 없으십니까?
“홀로 4남매를 키우신 어머니는 지난해 92세로 돌아가셨고, 다른 형제는 다 이민 가고 없습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모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오늘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함께 위패를 모십니다. 60 년 만에 만나시니 두 분 참 좋으시겠죠.”
-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나 힘들었던 일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당시 내가 8살 정도였는데 별로 기억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늘 바쁘셨는지 집에 잘 안 계셨고, 얼굴을 자주 볼 수가 없었어요. 명절이면 성묘 가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많이 늦었지만, 위패라도 이곳 현충원에 모실 수 있어서 기쁘다.”며 언제든지 부모가 보고 싶으면 달려올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모든 유가족의 헌화, 분향을 눈시울을 붉히며 지켜본 김형기(국립서울 현충원) 원장과 박경희(6·25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감식단 지원과장) 중령 헌화 분향과 마지막으로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3발의 조총 발사에 이어 묵념을 올렸다.
합동봉안식을 마치고 위패를 봉송할 각 유가족 대표들이 현충원 직원의 안내에 따라 위패를 모시고 현충관 중앙통로를 따라 봉송이 시작되었다. 그 뒤를 남은 유가족들은 봉송대열을 따라 현충관 앞 버스에 탑승한 후 현충탑에 도착하여 위패를 모신 후 참배를 했다.
참배를 마친 후, 영원히 안식처인 위패봉안 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직계가족이 없는 고(故) 육군 일병 김덕건 님과 고(故) 육군 일병 성춘교 임은 위패봉안 관 8판 4면 081호, 8판 4면 240호에 봉안되었다.
또한, 유공자 26명의 유공자 위패는 부부 위패로 봉안되었다. 봉안식이 끝나자 유족들은 이름을 찾아 확인 후, 다시 한 번 오열했다. 유복녀와 지금까지 살아온 서순아 씨는 “나도 멀지 않아 당신 곁에 올 것이니 이제는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라.”며 소맷끝으로 눈물을 훔쳤다.
합동봉안식을 주관하신 김형기(국립서울현충원) 원장은 “현충원에 묘소가 없다는 이유로 현충원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던 유가족 여러분께 그 마음 헤아리지 못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진즉 해야 할 도리를 다 못하였습니다. 이제라도 이곳에 소풍 오시듯 편안한 마음으로 언제든지 오십시오. 그리고 안녕히 가십시오.”라며 합동봉안식을 다 마친 후 유가족을 향하여 깊숙이 고개 숙였다.
'이제라도 유공자가 되어 현충원에 유해 없는 위패라도 모실 수 있어서 좋습니다. 스물 살에 입대한 형님이 올까 봐 평생 이사를 못가고 대문 한번 걸어 잠가본 적 없으신,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서 제일 기뻐하는 모습이 그려진다.'는 한 유가족은 현충원을 벗어나기 전 정문에서 다시한번 고개를 숙였다.
실버넷뉴스 서동애 기자 ehddo0828@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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