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훈의 달 6월이다. 6월 6일은 제58회 현충일, 6월 25일은 6·25 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3년이 되었다.
나라에는 근본이 있고, 행복에도 이유가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행복 뒤에는 현충원에 잠들어 계시는 17만 2천의 희생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쟁이 끝난 지 63년이 되도록 아직도 부모 형제 소식을 모르는 행불자가 많다. 그래서 국방부에서는 연중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 유가족들의 혈액을 채취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것은 이제 전사자들의 부모 형제인 유가족들이 세상을 많이 떠나고 없다는 것이다.
지난 현충일에 외아들인 오빠를 지금까지 국립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의 모든 전사자의 묘비와 무명명사 이름을 수없이 확인했는데 아직도 오빠를 찾을 수 없다는 여동생의 나이는 이미 80 나이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그는 오빠를 자신이 건강이 허락하여 걸음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찾을 거라고 했다. 6·25 전쟁이 있기 며칠 전, 휴가를 온다던 오빠는 62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라며 국립서울현충원 겨레의 마당 푸른 잔디를 뜯으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던 많은 사람을 울렸다. 그녀는 아직 보훈 가족으로 인정도 받질 못한고 했다.
지금은 보훈 가족으로 보호를 받고 주는 연금으로 기본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전사통지 하나로 남편의 죽음을 알았지만, 어디에 묻혔는지 알 길도 찾을 길도 없었다는 한 미망인.
아들 셋을 키우며, 장사, 식당일 등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자식을 키웠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30년이 지난 후, 아들들이 장성하여 남편이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져 있는 걸 알았다고 했다.
우리 할머니는 하늘나라에 가실 때까지 19살 막내딸을 잊지 못하셨다. 서울 용산에서 직장에 다녔던 고모는 6·25 전쟁 중에 행방불명으로 아직 소식이 없다. 이산가족 찾기 때에도 혹여 이북으로 갔을지 모르는 마음에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그런 고모를 할머니는 사망신고와 동시에 6·25 전쟁 중에 전사한 군인과 영혼결혼식을 해주었다.
6월 6일 현충일은 공휴일이지만, 꼭 휴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오전 10시, 짧게라도 호국 영령들의 넋을 위로한 묵념이라도 올리는 날이길 바람을 가져본다.
'국립서울현충원 나라사랑 > 현충원 블로그 강토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대형 태극기 (0) | 2013.07.13 |
|---|---|
|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서, "나라사랑 체험 봉사활동" 이은 발길 (0) | 2013.06.17 |
| 나라사랑큰나무 (0) | 2013.06.10 |
| 제58회 현충일 앞두고 현충원 묘역 단장 (0) | 2013.06.10 |
| 제58회 현충일 추념식, 국림서울현충원에서 거행 (0) | 2013.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