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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 서다/발길이 머무는 곳에서

기적이여 돌아오소서!

기적을 믿으며

 

여객선 세월 호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닷새째다. 대다수 국민이 애통한데 감히 글을 쓴다는 것도 많이 조심스럽다. 사고가 터진 날부터 밤새 자다 깨다 반복하며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번갈아 보면서 생존자를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모든 방송국에서 하던 첫날 사고현장을 지켜보면서 흘렸던 눈물도 이제 나오지 않는다. 그저 두 손을 모으고 기적을 믿어 본다.

 

지난 4월 16일 이른 8시 50분쯤,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가족들이 출근한 후 느긋한 마음으로 커피를 한잔 내렸다. 새벽에 읽다 둔 ‘자전거 도둑’이란 동화책을 읽다가 우연히 켜둔 텔레비전 화면에 “긴급 속보 여객선 침몰 중.”이란 붉은 자막이 떴다. 얼른 읽던 책을 접어두고 다른 채널을 돌렸다. 하지만 당시 정확한 보도를 전하는 곳은 없었다. 난 손전화기로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인천 제주 간 여객선 세월 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란 걸 알았다.

 

난 그때부터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론에서 처음 방송할 때부터 배는 이미 많이 기울여있었다. 우리나라 최대 여객선이라는 세월 호는 허무하게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부터 생선 꼬리처럼 뱃머리만 남을 때까지 맘 졸이고 눈물을 흘리면 두 손을 모았다. 가슴이 떨리고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예민할 수밖에 없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오래전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방송만 지켜보다가 점심도 거른 채 출근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저인망 어선을 타시던 아버지께서 여름이면 한두 달 동안은 배를 수리했다. 마침 여름방학이라서 엄마 대신 아버지 작업복을 세탁하여 농사일로 바쁜 엄마 대신 오전 8시 30분에 출발하여 저녁에 되돌아오는 작은 나무배 여객선을 타고 여수로 향했다. 연안에는 조용하던 바다가 육지를 벗어나자 파도는 산더미처럼 커졌다. 고향에서 여수로 가는 중간에 보돌바다가 있다. 평소에는 1시간 30분여 동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배가 바다 중간쯤에서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사람들이 뒹굴기 시작했다. 여객선 사무장과 승무원들은 괜찮을 것이라면 낡은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했다.

 

급기야 양쪽 출입문에 판자를 열십자로 대고 못을 박았다. 그 와중에 난 정말 무서워 아버지 옷 보따리에 얼굴을 묻고 큰 소리로 울지 못하고 소리죽여 울었다. 그때 옆 동네 아주머니가 어른들 사이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내 귀에 ‘무서워 마라. 괜찮을 거다.’고 나를 안심시키는 그 아주머니의 가슴속에서 쿵쾅거리던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선장과 기관장 그리고 대여섯 명 승무원의 피나는 노력으로 몇 시간의 사투 끝에 무사히 여수항에 도착했다. 도착 시각 한참을 지나도록 오지 않은 아버지는 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 들어 온 여객선이 닿자마자 객실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날 보자마자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얼른 등을 돌려 앉으며 업히라고 했다. 내가 업히자 아버지는 성큼성큼 걸어 배를 빠져나왔다. “아부지, 옷 가방 가져가야제. 옷 가방.” 아버지는 내 말은 듣는 척도 않고 안전한 곳에 날 내려놓고 다시 여객선실로 가시어 옷 가방을 챙겨오셨다. 그날 이후로 배타기를 꺼렸지만, 어느 순간 또 아무렇지 않게 여객선을 탔다.

섬이 고향인 관계로 어릴 때부터 수많은 해상 사고를 접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겠지만, 선박도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부산 서귀포 간 여객선 남영호, 1960년대 부산 여수 간 여객선 한일 호 침몰 때에는 친구 고모가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지고 최첨단 장비와 여객선 시설과 장비 그리고 무선시설은 어떤가. 태풍도, 폭풍도 아니고 망망대해도 아닌 연안에서 그것도 밤도 아닌 밝은 시간에 말도 안 되는 사건이다. 무엇보다 476명을 화가 나는 건 승객을 버리고 살겠다고 승무원끼리 연락하여 제일 먼저 구조된 선장과 기관장, 직접 배를 몰았던 항해사. 그들은 사람으로서 아니 수많은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는 여객선 선장과 승무원이 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사망자는 자꾸 늘어가고 생존자는 사고 이후 단 한 사람도 없다. 안타까운 시간은 자꾸 흐르고 애가 탄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과 일면식도 없다. 하지만 비통하고 애잔하여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으며 마음만 동동거린다.

   

수업 시작하기 전 ‘아이들에게 언니 오빠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하자.’며 두 손을 모았다. 2학년 여자아이가 기도를 끝내고 눈물을 보였다. 텔레비전을 보고 너무 불쌍한 생각 떠올라 눈물이 났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행사를 취소하고 평소 주말 고속도로보다 나들이 차량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변을 당한 아이들, 휴학하고 홀어머니와 동생을 돌보던 승무원 박지영 양, 어려운 형편에 결혼식을 올리고 1년 동안 미뤘던 신혼여행을 가다 사고를 당한 부부 등 구구절절한 수많은 사연을 어이할꼬. 하늘도 참 무심하다. 그 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이 어떨지 그저 짐작뿐이다. 부디 기적이여 일어나소서! 두 손을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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