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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나라사랑/현충원 블로그 강토지기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 순국자 30주기 추모식 거행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 순국자 30주기 추모식 거행

   - 국가유공자 제1묘역, 묘소 추모제 열리다 - 

구름 한점 없는 맑은 가을. 2013년 10월 9일 오전 9시.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1묘역에서는‘버마(현 미얀마) 아웅 산 외교사절 순국’30주기를 추모하는 묘소참배가 외교부 주관으로 거행되었다.

 참배행사에는 순국 외교사절 17명을 추모하기 위해 외교부 김규현 제 1차관과 조태열 제 2차관, 김형기 국립서울현충원장을 비롯하여 외교부 직원 40여 명과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묘소 참배 추모행사가 거행되었다.

고 이범석 외무부장관 묘소를 시작으로 고 서석준 부총리 묘소 등 마지막 고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묘소까지 17명의 순국자 묘소 참배행사를 마쳤다. 

< 고 서석준 부총리 묘소 앞 제단에는 일반 참배객이 올린 향이 연기로 피어오르다.>

<묘소 참배를 위해 이동하는 참배객>

 

순국 외교사절 17명은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수행하고 서남아·대양주 6개국을 순방하던 중 버마(현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를 참배하다 북한의 만행으로 순국했다. 이미 고인이 된 미망인도 있지만, 아직 생존에 있는 미망인을 비롯하여 가족들이 남편과 아버지를 기리며 묘비를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고 이범석 외무부 장관 미망인 및 유가족이 헌화, 분향 후 묵념을 하고 있다. 모진 세월을 어찌 견디셨는지 묻는 말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

 

참배 행사에 참여하고 홀로 순국외교 사절 17명의 묘소를 차례로 분향하는 고 하동선 해외협력기획단장 유가족인 하서용(46세) 씨를 만났다.

  - 추모 참배 행사에 참여한 신 후 다시 참배하신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아! 네. 사건 당시 해외협력기획 단장이셨던 고 하동선씨가 저의 아버지십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마지막까지 함께 생을 마치신 분들께 개인적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 그 당시 심정이 어떠셨는지, 아버지를 하면 생각나는 기억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그때 제 나이 16살(중 3)이었습니다. 처음 비보를 들었을 때는 설마 했지요.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우리는 삼 남매로 아버지께서는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셨습니다. 집에 일찍 오신 날에는 늘 내 숙제를 봐주시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상하셨고 우리 삼 남매에게 참 잘하셨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고 하동선 해외협력위원회기획 단장묘소.> 

"아버지께서 떠나신 후 가슴앓이가 깊었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신지 3년 후에 돌아가셨어요. 지금 이곳에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 며 아직도 생존에 계신 분들이 많은데 우리어머니는 아버지를 잃으신 후 정말 힘들어 하셨어요. 당시 어머니께서는 늘 울고 계셨지요."

- 오늘 참배는 누구랑 왔는지요?

"저 혼자 왔습니다. 엄머니 돌아가시고, 우리 삼 남매가 살았는데 형님도 지금은 이세사에 계시지 않고 누나와 저만 남았습니다. 누나가 매년 아버지 기일에 함께 오는데 다른 일정이 있어서 오늘은 부득히 저만 참석했습니다." 

 

 

<고 서상철 동작부장관 묘소에 헌화 분향하는 미망인>

고 서상철 동자부장관 유가족은 자체적으로 오전 11시 고인을 기리는 추모제를 올렸다. 사진 속  고 서상철 동자부장관 30년이 지났지만 사진 속 모습 그대로 멈추었다. 그 반면 배우자를 잃고 이제 흰머리가 성성한 미망인의 모습과 대조적적이었다ㄱ. 

 

<고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묘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박문두 씨>

- 이곳에 계신 고 이중현 기자와는 어떤 관계신지요?

"이중현 기자와는 동아일보 사진부 동기입니다. 참 아까운 사람입니다. 지금도 함께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실은 대통령을 수행을 취재하는 기자가 아니었어요. 영부인을 수행하는 쪽이었는데 동아일보에서 취재보도를 했으면 좋겠다는 청와대 관계자 뜻에 따라서 그곳에 가게되었다가 참변을 당했지요." 

 

젊은 나이에 순국한 고 이중현 기자 묘소에는 많은 조화와 그를 기억하는 동료기자들이 참배 했다.

30년 전 당시 미얀마를 순방 중이던 전 전 대통령 일행 역시 아웅산 묘소를 참배할 예정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 참배 예정시간이었던 10시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고, 그에 앞서 우리 정부 측 인사 등 수행원들은 행사 예행연습을 진행했다.

예행연습을 위해 애국가가 울리자 북한 공작원은 행사가 시작된 것으로 착각, 미리 설치한 폭탄을 터뜨렸고, 전 전 대통령 수행원 17명과 미얀마인 7명이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50명은 큰 부상을 당했다.

순국 외교사절은 고 서석준 부총리, 고 이범석 외무부 장관, 고 김동휘 상공부 장관, 고 서상철 동자부 장관, 고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고 심상우 민정당 비서실장, 고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 고 김용한 과학기술처 차관,고 이기욱 재무부 차관, 고 김재익 경제수석 비서관, 고 하동선 해외협력기획단장, 고 이계철 주 버마 대사, 고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고 이재관 청와대 공보비서관, 고 정태진 대통령 경호원, 고 한경희 대통령 경호원, 고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등 17명이다.

취재를 마친 후, 순국자 열 일곱 분의 묘소에 참배를 했다. 갑자기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큰 슬픔을 이겨낸 유가족에게 마음으로 큰 위로를 드리며 가을볕이 내리는 현충원을 나섰다.

 

                                                                   <블로그 기자: 서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