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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나라사랑/현충원 블로그 강토지기

제59회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 전남 고흥 현충탑을 찾아서

   59회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 전남 고흥 현충탑을 찾아서

                    -전남 고흥 현충탑에서 추념식 거행-

2014년 6월 6일 제59회 현충일인 6월 6일 오전 10시, 전남 고흥군 고흥읍 봉황산 현충탑에서는추념식장을 찾았다. 식이 열릴  현충탑 광장에는 1시간 전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행사에는 보훈 가족과 보훈 단체장을 비롯하여 박병종군수,군의회의장단 및 각급 기관단체장, 군민 학생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9시 57분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그리고 10시 순국선열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 중에는 1분 동안 싸이렌이 울렸다.  이어서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엄숙히 진행했다. 

<한국 미망인회 고흥지부 회원들 >

 

식이 열릴  현충탑 광장에는 1시간 전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었다. 

고흥 여자중학교 학생들이 추모행사에 참석하는 추모객에게 추모 리본을 달아주고있다.  리본을 달아 주고 있는 이윤주 학생은 "나라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감사한 마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그들을 잊지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에 도움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국민의례  중 국기의 대한 경례하는 고흥군 보훈 단체장들>

추모헌시를 낭독하는 박재신 전몰군경유족회 회장은 6. 25 전쟁  중 전사한 아버지얼굴도 모르는 유복자이다.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생활이 어려워 개가를 하여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큰집에서 살면서 받은 설움은 이루 다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느냐며  눈시울을 불혔다.

<전몰군경 유족회 박재신 회장>

1951년 당시 입영통지를 받고 제주도 훈련소로 떠날 때 남편 故 조재근의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다는 정귀순 (83) 미망인은 그후 남편을 소식을 몰라 애를 태우던 중, 나라에서 "남편이 집에 왔는지 연락이 왔다. 그래서 군대가 사람이 어찌 오겠느냐고 했다. 아마 그때 남편이 행방불명이 되어서 찾았던 걸 몰랐다. 그후 국립묘지에 묘가 있으니 그러니께 지금은 뭐라고 하등만 국립서울현충원!이라고 하제. 그곳 저 위쪽에 묘역에 묻어있당께롱."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인자는 눈물도 안 나와. 서울 현충원으로 갈것인디 농사철이고  그곳에는 아들과 손자가 갈것이여."며  추념식이 끝나자 급히 찾아와 손전화기를 내밀었다. "우리 손자여, 받아봐." 손자는 할아버지 묘역은 44묘역인가 46인지 늘 가는데도 잊어먹는다. 내일 쯤 현충원에 가면 바로 찾은다면 우리 할머니 바꿔주세요." 라고 했다.

<항일 추모탑에 헌화 분향>

 

<임정양난탑 헌화 분향>

 현충의 노래 제창을 끝으로 고흥군 제59회 현충일 추념식을 마쳤다. 이어서 추모객들은일추모탑과 임정양탑에 헌화 분향 했다. 

월남 참전하여 고엽제로 다리가 불편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추념식 내내 눈을 감고 있는  참전 용사와 이제 남편 얼굴도 가물거린다는 곽명애(86) 미망인은  남편은 스물다섯살에 전사한 남편사이에 딸하나 키우며 지금까지 살았다고 했다. 

<사진 왼쪽 두 번째 곽명애 미망인 >

고흥군 풍양면 울치에서 사는 한 미망인은 남편의 전사 소식에 혼절을 했다, 혹여 남편하면 제일 기억에 남은 걸 말해달라고 하자" 오메! 여루와서 (부끄러워서)뭔 말을 허. 3년 뿐이 못 살았어, 몇 번이고 국립서울 현충원에 묻으라고 연락이 왔는데  시어른들께서 종손이라서 선산에 묻기를 원하여 묘지가 선산에 있다."고 했다. 전쟁 미망인들의 구구절절한 한많은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짓게 했다.

충혼탑 옆에는 진분홍 철쭉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위로 하듯이 활짝 피었다.  서울로 귀경하면 정귀순 미망인 남편인 故 조재근 묘비를 꼭 한 번 찾아 뵐 것을 약속하는 내 손을 잡아 준 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았다.  전국에는 많은 전쟁 미망인이 있다. 하지만 그들도 이제 80이 훌쩍 넘어서 남편을 기리는 추념식에도 참석못하는 이가 많다. 또한, 한많은 세상을 떠나 남편을 떠난 길을 뒤따르고 있다고 한다.

 

                                                                 <<블로그 : 서동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