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날리기

용인 민속촌 하늘에 연이 높이 떠 있다. 까마득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진 지네 연과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연들이 초겨울의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오른다. 연줄을 잡고 있는 내 유년으로 데려갔다.
난 여자 아이 답지 않게 늘 손위 작은오빠와 함께 연을 만들어 날리기를 잘했다. 초겨울이면 대나무 밭이 있는 사촌 고모네로 연대를 만들 대나무를 가지러 갔다. 우리 남매는 가져온 대나무를 쪼개고 다듬어 연 살을 만들 통대를 쪼개고 깎으며 낫이나 칼에 손을 베어 피가 흘러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때 다친 흉터가 아직도 손등에 남아있다. 너는 여자애 가 크면 무엇이 될까?... 늘 엄마의 걱정도 할머니의 방패막이에는 속수무책이다. 어릴 때, 어떻게 놀던지 무병하게만 크라는 우리 할머니의 손자손녀를 기르는 방식은 유별났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엄마도 할머니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
우리가 만든 연은 고작 공책을 찢어 만들거나 아니며 시멘트포대종이로 만든 연이었다. 어쩌다 이장 집에서 얻은 신문지로 만들기도 하였지만 몇 번 띄우지도 못하고 잘 찢어져 제일 튼실하고 만만한 것은 역시 시멘트포대종이가 으뜸이다. 양지 바른 집 뒤 돌담 밑에서 우리는 양 무릎위에 연대를 올려놓고 반질하게 최대한 얕게 깎았다. 그래야 연이 가벼워 잘 떠오른다.
밥 때가 지나도록 오지 않은 우리를 찾던 엄마는, 콧물이 나오면 옷소매로 쓰윽 훔치고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옷에는 흙과 대팻밥이 범벅이니 동네에서 깔끔하기로 소문난 엄마 눈에 우리가 예쁘게만 보일 것인가. 살그머니 비치는 엄마의 그림자에 놀라 날쌔게 도망치는 오빠를 쫓으러간 사이 나는 얼른 그 자리를 피해 보지만 우리 남매는 붙잡혀 어김없이 겉옷을 벗고 그 겨울 다가도록 쫓겨나길 수차례, 멀리 못가고 옆집 돌담 아래서 오돌 오돌 떨면서도 우리 남매는 또 다시 연 만들 이야기꽃을 피웠다.
연이 완성되면 더 큰 문제는 연 실이다. 가게에서 파는 튼실한 실은 돈이 없어 살 수 없으니 애매한 반짇고리에서 오빠는 엄마가 무서워 손도 못 되니 늘 무명실을 몰래 훔치는 일은 내 몫이었다. 그러나 그 실은 너무 가벼워 연이 높이 날지도 않고 바람이 조그만 세게 불어도 쉽게 끊어져 동네아이들과 연싸움은 엄두도 못 낸다. 그때마다 변변치 않은 연을 들고 우리는 언덕 위에 있는 보리밭으로 올라간다.
만든 연이 잘 오르면 좋은데 때로는 빙빙 돌면 바로 땅으로 곤드박질 치며, 애써 만들어 제대로 띄워보지도 못하고 찢어진 연을 들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올 때가 더 많았다.
설날이면 모처럼 집에 오신 아버지는 연대를 손수 깎아 한지로 튼실한 최고의 연을 만들어주었다. 또 잘 끊어지지 않은 굵은 연줄에 유리가루를 묻혀 매어주고 동네 아이들과 연싸움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연을 올리다 실수를 해도 짜증한번 내지 않고 언제나 내가 먼저 하겠다고 하면 늘 양보하던 작은오빠. 그렇게 함께 울고 웃으며 엄마에게 쫓겨 골목 달리기를 하던 작은오빠.
그곳 하늘 가까이 떠 있는 연을 보며 같이 놀았던 우리 남매의 한 겨울의 예쁜 추억을 기억하리라.